
흙을 눌러 흙판을 만들고 그림을 새겼다. 그리고 완전히 말린 다음 가마에 두 번 구웠다. 초벌 후 유약을 바르고 재벌 가마에 넣을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 그대로 구웠다. 올해 이런 도예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다.
이 작품에는 코너 플래그라 불리는 깃발 그림을 새겼다. 코너 플래그는 축구 같은 스포츠 경기장의 네 모퉁이에 꽂혀있는 깃발이다.
축구 경기에서 종종 이 코너 플래그 앞에 공을 두고 차는 코너킥 장면을 볼 수 있다. 코너킥은 골을 넣을 확률이 증가하는 중요한 기회이다. 그렇기에 코너플래그 옆에서 킥을 준비하는 장면은 비장할 수밖에 없다.
담당 키커가 차기 좋은 위치에 올려두기 위해 공을 여러 번 만져 고정한다. 날아간 공이 떨어질 자리에 위치한 다른 선수들은 최대한 유리한 자리를 잡기 위해 상대 선수들과 신경전을 벌인다.
경기를 볼 때 코너킥 장면에서 가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직감할 때가 있다. 지금 카메라에 잡힌 선수가 무슨 일이든 낼 것 같다고 생각되면 진짜로 골이 들어갔다.
반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을 예감하고 단념할 때도 있다. 경기가 끝날 무렵 득점이 간절한 상황에서 코너킥을 준비할 때, 절대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고 미리 실망하기도 했다.
이런 직감은 맞으면 기억에 잘 남을뿐 항상 적중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 미래는 예측 할 수 없다.
이걸 만들 때쯤 코너플래그를 자주 떠올렸다.
깃발 앞에 공을 두고 어디로 찰 것인지 망설이는 몸짓과 차기 직전의 발동작이 머릿속에서 반복재생되었다. 결과가 두려워서, 앞길이 막막해서 그 장면에서 계속 머물렀다.
그래서 이 깃발을 흙에 새겼다. 기록하기라도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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